"비처럼 음악처럼..." 이 구절을 들으면, 거칠지만 너무나도 슬픈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불꽃처럼 살다 간 '가객' 김현식. 그의 삶은 그의 노래처럼 처절하고, 아름답고, 또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32살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는데요. 오늘은 피를 토하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천재 뮤지션, 김현식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과 그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남겨진 가족과 노래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ㄱㄱ
불꽃처럼 살다 간 천재, 김현식 프로필
먼저 대한민국이 사랑한 언더그라운드의 제왕, 김현식의 프로필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이름: 김현식 (金賢植)
- 출생: 1957년 12월 30일, 서울특별시
- 사망: 1990년 11월 1일 (향년 32세)
- 사망 원인: 간경화 (간경변)
- 신체: 171cm
- 가족: 아내(부인), 아들 김완제
- 데뷔: 1980년 1집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 대표곡: 비처럼 음악처럼, 사랑했어요, 내 사랑 내 곁에, 골목길, 넋두리 등
음악을 향한 순수했던 열정, 그리고 시련
김현식의 음악 인생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열정과 시련이 함께했습니다.
유복했던 유년 시절과 음악의 시작
충남 홍성의 유지였던 할아버지와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김현식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길을 따르기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죠. 1976년부터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허스키하면서도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는 금세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대마초 사건과 늦춰진 데뷔
1980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 사건은 그의 활동에 큰 제약을 가져왔고, 한동안 대중 앞에 서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어떤 시련으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울린 그의 노래들
김현식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의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 자체였고, 듣는 이들의 영혼을 파고드는 절규였습니다.
- 사랑했어요 (1984):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2집 앨범의 히트곡으로, 처절한 사랑의 감정을 담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 비처럼 음악처럼 (1986): 3집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으로,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후의 명곡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김현식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한 곡입니다.
- 골목길 (1988):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블루지한 감성과 그의 거친 목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명곡입니다.
- 내 사랑 내 곁에 (1991):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작 앨범의 타이틀곡.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는, 그의 죽음과 맞물려 전 국민적인 추모곡이자 그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습니다.
짧았던 사랑과 그의 분신, 아들 김완제
거친 상남자의 이미지와 달리, 김현식은 사랑 앞에서는 순수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1982년, 우연히 들른 신촌의 한 옷가게에서 지금의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 김완제 군을 얻었죠.
하지만 잦은 음악 작업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 김완제는 훗날 가수로 데뷔하여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며 그를 기리기도 했습니다.
1990년 11월 1일, 전설의 마지막 순간
김현식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손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간경화, 죽음의 그림자
과도한 음주는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간경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병원을 오가며 음악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며 만든 마지막 앨범
그의 마지막 열정이 담긴 앨범이 바로 5집 '넋두리'와 유작 6집 '내 사랑 내 곁에'입니다. 특히 5집 앨범은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아가며 녹음한 것으로,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동아기획 김영 대표가 제발 포기하자고 말렸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를 토하면서까지("각혈") 녹음을 강행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우리 곁에 마지막 목소리를 남겼습니다.
"내일 녹음할게요" - 마지막 통화와 임종
그의 마지막 순간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2시간 전, 소속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 들어가야겠어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 그는 자신의 자택에서 누나 김혜령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들은 소속사 사장은 "어제 두 시간 전에 현식이가 나한테 밝게 전화했는데, 죽었단 말이야?"라며 소리칠 정도로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32년. 한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김현식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비처럼 음악처럼 그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영원한 가객, 김현식. 그를 다시 한번 추모합니다.
/ㄱㄱ
송창식, '쎄시봉' 천재의 모든 것! 나이·부인·처조카 입양·감옥 수감 파란만장 인생 총정리
한국 포크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쎄시봉'의 천재 뮤지션 송창식.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우리는' 등 그의 노래는 한 시대를 정의했습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www.thinkaloudblog.com